씨앗과 농사, 때로는 그와 연관된 농부와 농업 이야기를 한 알씩 씨나락 까먹듯이 가볍고도 재미나게 다룹니다.
2026.08.12
8월 이달의 씨앗
뽀얀 솜털을 가진, 부엉다리콩
찢어지도록 서로 사려 했던 콩, 뽀얀 털에 숨겨진 찰지고 고소한 장맛 이야기
콩밭을 걷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콩이 있습니다. 바로 뽀얀 털을 자랑하는 ‘부엉다리콩’입니다. 여느 장콩들과 달리, 포기 전체가 뽀얗고 부슬부슬한 솜털로 뒤덮여 있는 것이 특징이지요. 멀리서 보면 마치 서리를 맞은 듯, 콩밭 사이에서 홀로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전북 진안 부엉다리콩

전북 진안 부엉다리콩

진안 부엉다리콩 수확철, 기증농부님 함께
'부엉다리콩',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름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가설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콩이 자라는 모양새가 털이 무성한 부엉이 다리를 닮았다는 설. 또 하나는 “참 뿌옇다(뽀얗다)”라고 하던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뿌연다리 → 뿌엉다리 → 부엉다리’로 소리가 변했다는 설입니다.
옛 씨앗의 이름에는 색과 모양, 동물, 재배 시기와 방식까지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리 땅의 빛깔과 질감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뿌연 다리 콩’이야말로, 이 씨앗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부엉다리콩은 이렇게 수집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 재래작물인 콩은 현재까지 토종씨드림에서 수집된 콩(메주콩, 밥밑콩, 나물콩)이 1,623점으로, 전체 수집 씨앗 중 15%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입니다. 이 중 메주콩만 591점. 메주콩, 부석태, 부악다리콩, 부엉다리콩, 한아가리콩, 유월두, 홀애비밤콩, 흰서리태, 감미콩, 보다콩 등 다양한 이름의 메주콩들이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부엉다리콩은 콩알의 생김새와 자람새로 구분할 수 있는 특별한 메주콩으로, 완주군·정선군·봉화군·진안군·장수군 등에서 수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모인 부엉다리콩은 총 10점, 그중 절반인 5점이 전북 진안군 마령면에서 나왔습니다.
진안에서는 예로부터 맛이 좋아 장에 팔러 나가면 상인들이 서로 사려고 잡아당겨 “보자기가 찢어지는 콩”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 씨앗을 이어가시는 어르신들을 진안에서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거창군, 옥천군 등 다른 지역에서도 ‘부엉다리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는 않지만, 이와 닮은 토종콩이 ‘장콩’, ‘메주콩’ 등의 이름으로 곳곳에서 수집되고 있습니다.
뽀얀 솜털의 비밀
원래 경상도에서는 배축(줄기 아랫부분) 색이 푸르고 흰 꽃을 피우며, 가지에 흰 털이 많은 콩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여기서 ‘다리’는 ‘태(太)’, 즉 콩을 뜻하는 말입니다. 가지와 꼬투리의 털이 하얗고, 콩알도 뽀얀 빛을 띠며, 크기는 중소립 정도. ‘보악태’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 콩으로 된장을 담그면 색이 유독 뽀얗게 난다고 합니다.
진안에서 수집된 부엉다리콩은 지역 적응성이 전반적으로 좋고, 종피에 은은한 광택이 있으며 중립 정도의 크기를 갖습니다. 진안, 순창 지역에서는 자주꽃이 피는 부엉다리가 간혹 수집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름의 변천 과정입니다. 경북 봉화, 안동 등지에는 15세기 국어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미루어 볼 때 경상도에서 ‘부악다리’, ‘붏다리’, ‘보악다리’로 불리던 이름이 세월을 거치며 ‘부엉다리’로 변형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간혹 수집되는 ‘부엉다리팥’ 특징으로 “털이 많아 고라니가 덜 먹는다”, “꼬투리에 보클보클한 털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부엉다리’라는 이름 자체가 결국 ‘털이 많다’는 뜻을 품고 있는 셈입니다.
전북 장수 부엉다리콩 흰꽃

전북 장수 부엉다리콩 꼬투리

전북 장수 부엉다리콩 수확기 콩대

전북 진안 부엉다리팥, 흰털이 북실북실한 꼬투리
찰지고, 달고, 고소한 콩
진안에서는 부엉다리콩이 워낙 찰져서, 메주를 띄우기 위해 콩을 삶아 찧을 때 절구공이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수집된 재래종 메주콩들이 대체로 찰지고 달다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그중에서도 진안 부엉다리콩은 유독 찰기가 강하고 단맛과 고소한 맛이 뛰어나 장맛과 두부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시어매(시어머니) 때부터 심은 콩을 받아서 그대로 심었지, 옛날 어르신들이 ‘부엉다리콩’이라 불렀어. 얼마나 찰진데, 찰진콩이 메주를 쒀도, 청국장을 띄워도 더 좋아, 신식 것(신품종)은 버글버글하니 안 찰지거든. 이 콩이 단맛이 나서 간장 맛이 좋고, 두부하고 콩가루를 내면 고소하고 달아.- 진안 수집 현장에서"
사라졌가는 재래종, 부엉다리콩에서 다시 시작하기
한때 이 땅 곳곳의 밭머리를 지켰던 수많은 재래콩들이, 지금은 이름조차 낯설어질 만큼 하나둘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부엉다리콩처럼 특별한 이름과 사연을 품은 씨앗들도 이제 몇몇 어르신들의 손끝에서만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 찰지고 달고 고소한 부엉다리콩을 시작으로,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콩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텃밭 한 켠에 심어보는 것도 좋고, 부엉다리콩으로 담근 된장과 두부를 맛보는 것도 좋습니다. 작은 관심과 이용이 쌓여야 씨앗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재래콩들이 우리의 식탁과 밭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관심과 발걸음을 기다립니다.
부엉다리콩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동부의 다양한 이름들, 다양한 음식들, 추억에 담긴 이야기 혹은 새로운 요리법 등 좋은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토종동부 이야기가 더 풍성해집니다. 혹시 이야기를 보충하거나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이야기와 함께 씨앗이 더 많은 곳으로 퍼져나가기 바랍니다.
# 토종씨앗 # 토종콩 # 부엉다리콩 # 메주 # 재래종 # 씨앗 이야기 # 토종씨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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